경남 맛과 멋 - 3000냥 국밥집을 찾아서
기사입력 2011-02-07 15:37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남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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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술자리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는 연말이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를 두 배 곱한 것만큼 간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10대엔 20km대로, 30대는 60km대로 가다가 40대가 되면 좀 빨라져 80km대가 되고, 50대를 넘어서면 100km대로 씽씽 지나간다.” 정말 그렇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은데도 무심한 세월은 나를 두고 100km 이상의 속도로 씽씽 지나간다.
유난히 모임이 잦은 연말이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깔려서인지 저녁 모임은 대부분 음식과 술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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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들어서부터 벌써 세 번이나 뷔페 모임을 가졌다. 올해 오픈한 마산 어시장 근처의 웨딩그랜덤에서 개최한 오동동상인연합회 후원의 밤과 대우백화점 소연회장에서 열린 북마산가구거리 송년의 밤. 다 마산에서 유명한 뷔페식당에서 정성들여 만든 음식이다. 값으로 치면 한 사람당 2만원이 넘는다. 뷔페가 나오면 주로 초밥과 해물 위주로 먹는데, 이것도 뷔페를 여러 번 다녀보면서 생긴 노하우다.
뷔페는 먹을 만큼 덜어다 먹고, 천천히 자주 가져와 먹는 게 좋다는 것은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여러 번 덜어먹기 번거러워 보통 두어번 덜어다 먹고는 그만둔다.
그러다 보니, 먹을 땐 이것 저것 여러가지를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엔 무얼 먹었는지 잘 모르겠고 배는 부른데 웬지 허전한게 뷔페다.
그것은 파티문화가 일상적이고 개인주의가 발달한 구미의 음식문화의 산물인 뷔페가, 음식을 한상 차려 놓고 둘러앉아 먹는 우리의 전통적 음식문화와 맞지 않아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달아 세 번이나 뷔페를 먹고 나니, 얼큰한 장터국밥이 먹고 싶어졌다. 가까운 장군동 시장을 찾았다. 옛날식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장터국밥 분위기를 내는 집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이외로 국밥집이 눈에 띄지 않는다.
포기하고 집근처의 돼지국밥집으로 가려다 산복도로 쪽으로 난 길에서 발견한 집이 ‘3000냥 국밥’이다.
들어가 소고기 국밥을 시켰다. 시간을 두고 끓여내어 옛날 장터에서 가마솥을 걸고 종일 끓여서 국에다 밥을 말아 김치 하나로 내놓던 장터국밥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맛이 났다. 3,000원으로 채산이 맞느냐고 하니 산복도로 쪽 중고생들이 주로 이용해 시중가격처럼 받을 수 없어 박리다매를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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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과 희망
김준태 (1948~)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추억과 희망이여.
… (중략)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악마와 짐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노래하고 즐거워한다.
이 지구상 어린 아기의
발가락이 하나라도 남아서
풀꽃 같은 몸짓으로 꿈틀거리는 한
오오, 끝끝내까지 뜨겁게 끓여질 국밥이여
인간을 인간답게 이끌어 올리는
국밥이여 희망이여….
김준태 : 전남 해남 출생. 조선대 사대 독어과 졸업. 시집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김준태 시인의 유명한 ‘국밥과 희망’이다.
올 한해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많고, 즐거운 것보다 괴로운 것이 많았을 것이지만, 어두운 골목, 스산한 시장 한 귀퉁이의 국밥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니 그 사람을 그리며 혼자서라도 따뜻한 국밥을 먹으며 그 국밥의 온기처럼 새해의 희망을 따듯하게 품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