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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찾아오는 시각. 짙게 낀 어둠 사이에서 혼자 환히 불을 밝히는 파출소 안은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가정폭력으로 현행범 체포되어 온 남자가 수갑을 찬 채로 난동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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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집 유리 깨는데 네놈들이 왜 날 잡아와!”라며 말문을 연 그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욕을 고장난 라디오처럼 끊임없이 반복하며 공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난 머리가 아파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신고출동시 만나게 되는 이런 악성 민원인의 태도를 하루에도 몇 번씩 겪다보니 그때마다 쌓인 채 나가지 못한 화가 내 몸속에 가득 차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유독 예민한가, 술 취한 사람들의 소리를 속에 담아두지 않는 법은 없나 고민을 했으나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아 동기들에게 내 고민을 말하자 부패한 시체를 본 동기는 불면증이 생겨 잠을 깊게 못 잔다고, 주취자 신고가 유독 많은 곳에서 일하는 동기는 눈을 감으면 귓가에서 하지도 않은 고성방가가 들려오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렇듯 경찰은 직업적인 특성상 어쩌면 육체적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이 드는데, 이런 경찰관을 상대로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해주기 위해 2014년에 설치된 경찰 트라우마 센터는 전국에 4곳(서울, 대전, 부산, 광주)에만 설치되어 있어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경찰들은 방문 자체가 어렵고, 그나마도 인력이 부족하여 많은 상담수요를 제때 다 수용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런 현실적 여건만큼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직업이니까 감내해야 한다”는 대다수 경찰관들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감기가 별 것 아니라고 놔두다간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는 것처럼, 별 것 아닌 단순 스트레스라는 생각에 그대로 뒀다간 몸 속 깊이 퍼진 스트레스가 어떤 병을 가져올지 모른다.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하고 치료해야 하는데 약해 보일까봐, 다 참는데 나만 엄살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주저하는 태도는 마음만 더욱 아프게 할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는 이성복 시인의 구절이 떠오르는 새벽.
언젠가는 경찰관들이 아픈 곳을 주저 없이 얘기하고 그에 알맞은 치료를 받으며, 그로 인해서 더 나은 치안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덧붙여, 잘못된 일을 했으면 비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저 술에 취했다는 이유, 막무가내식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무조건적인 비난을 일삼아 경찰관을 병들게 하는 일부터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밤 바람이 유독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