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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영웅 ‘남이 장군’ 창녕군에 터를 잡다.
남상해 대종회장과 후손들, “장군 사당을 국가 지정 문화재 승격해 관리해야..”
기사입력 2018-04-29 13:35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김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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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철 사당건립회 회장등 후손들 ‘사당’과 ‘기마상’ 준공식 

남상해 대종회장과 후손들, “장군 사당을 국가 지정 문화재 승격해 관리해야..”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교과서에 나오는 조선시대 불세출의 영웅 남이장군의 그 유명한 시다. 남이장군이 창녕군 부곡에 위치한 할아버지 의산위공 남 휘 선생과 와 할머니 정선공주의 묘 바로 옆에 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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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기념관 준공식에 참가한 종친회 간부 및 내빈들이'기마상' 제막식을 갖고 있다.(여명808 창시자인 남종현 그래미회장 기증)     ©경남우리신문 편집국

 

충무공 남 이 장군 사당건립회(회장 남승철)는 28일 오전 11시,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산 1-6 소재, 남이장군사당에서 김충식 군수, 안홍욱 의장, 엄용수 국회의원, 공용기 경찰서장을 비롯해 남씨 의산위공파 및 종친과 군민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이장군 기념관 준공식 및 기마상 제막식’을 가졌다. 

 

사당건립회 남승철 회장은 인사말에서 "남이장군께선 15세때 귀신을 보는 눈이 있어 좌의정 권람의 딸을 구한 인연으로 사위가 되었으며,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해 이시애 난에 출전해 평정한 이후, 각종 민란과 전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26세에 병조판서(국방부장관)에 오른 불세출의 영웅"이라며 "하지만, 류자광등의 모함으로 한강변에서 처형을 당하셨다“고 애통해 했다. 남 회장은 이어 ”남이 장군의 사당 준공은 젊은 후손들에게 호연지기를 함양시키고, 나라에 대한 충절과 애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라며 "사당 준공에 큰 배려를 해주신 경남도와 김충식 창녕군수, 그리고 성금을 기탁해주신 종친들게 감사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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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 기념관 준공식 모습(원내사진은 남승철 사당건립회 회장)     ©경남우리신문 편집국

 

 

남상해 대종회장은 “충무공 시호를 받은 분은 총 9명으로 남이 장군은 550년전에 받았지만, 이순신 장군과 곽재우 장군의 사당에 비해 너무 늦었다”면서 “종친들의 성금으로 준공한 사당을 국가문화재로 승격시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력 촉구해 종친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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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 사당 및 기념관 컷팅식을 하고 있다.     ©경남우리신문 편집국

 

김충식 군수는 축사에서 “남 이 장군님의 애국충정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큰 전 국민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면서 “장군님의 사당과 기념관, 애마였던 적마를 탄 기마상이 창녕군에 위치한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으로 우포늪과 부곡온천을 연계한 관광 명소 및 애국충절의 장으로 정착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준공식은 사당과 기마상 건립에 참여한 박태승 토목설계소장외 1명에게 감사패, 사당건립 성금을 기탁한 종친 19명에게 공로패가 전달됐으며, 식전 식후엔 흥겨운 공연행사도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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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전시된 찰갑과 각종 무기류.     ©경남우리신문 편집국

 

남이장군 기념관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전각 1채와 장군의 유물 및 사료가 전시된 전각 2채로 조성되어 있으며, 장군이 착용했던 찰갑과 투구, 장검과 월도 및 창, 세조임금이 하사한 ‘적개공신록’, 무과장원급제 및 병조판서 교지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기념관내 조성된 애마인 적마를 탄 남 이 장군의 기마상은 숙취해소 음료 발명가인 남종현 그래미 회장이 기증했다.

  

기념관은 남이 장군의 할아버지인 의산위공 휘와 세종대왕의 친 여동생인 정선공주의 묘에서 우측으로 3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과 종친들이 찾을 것으로 보여진다. 의산위공파 후손들이 창녕군 부곡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장군이 역모죄로 그 일가들이 전라도 진도로 유배되어 생활하던 중,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전 임진왜란으로 피난길에 올라 지금의 창녕군 부곡면 구미동에 정착해 구봉선원을 건립해 충경공, 소간공, 충무공 위패를 봉안했으나, 대원군에 의해 서원이 철폐당했다. 

 

남치우 추진위원장은 "묘가 있는 화성군에는 사당도 없어 후손들이 제도 제대로 지내지 못해 불편과 불만을 가져오던 중, 2012년 종친회의 사당건립 승인을 받아 2013년 사업을 신청해 총 사업비 14억원을 들여 오늘 준공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남이장군은..?] 

남이(南怡)는 본관이 의령으로 144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의산군 남휘, 할머니는 세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이다. 부친 남빈의 벼슬은 군수에 그쳤으나,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15세때 좌의정 권남의 딸이 귀신에 씌여 사경을 해메던 것을 남 이가 치료해줘 귀신조차 무서워할 정도로 용력과 기상이 대단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무속인들은 남이를 신령으로 모시고 있으며, 억울하게 죽은 장군의 영혼을 위령제로하는 행사가 서울시 문화제로 지정되어 ‘남이장군 대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장군은 이시애의 난 때 뛰어난 무공을 발휘해 진압하고, 여진족 정벌에 참여해 추장 이만주 부자를 사살하면서 조선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임금에 오르면서 유자광등의 모함으로 한강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장군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없었는 데 장용대 대원들의 주선으로 화성군 비옹면에 장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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