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국의 기싸움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중재론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
중재 외교가 곤경에 빠진 것은 어찌보면 문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간 양국의 비핵화를 접근하는 방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재차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려 냉각기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문 정부가 모른다는 것은 무능을 넘어 무책임한 자세다.
'하노이 노딜'은 어찌보면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지난해 6.12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 회담 직전 미국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회담 취소 발표를 했었던 사례가 있지 않은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는데도 우리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의지를 피력하며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미국과 계속 엇박자를 보여오고 있다.
한미 간 신뢰와 공조를 바탕이 됐을 때 비로소 중재 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지, 집토끼인 한미공조가 흔들린다면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외교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이지 뜬구름 잡는 '이상(理想)'이 아니다.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중재 외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중재자를 자처하려 한다면 어느 쪽과도 이해관계가 없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자여야 하고 상황을 컨트롤 할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특히,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생명인 중재자가 북한 편이나 거들고 있다는 의심을 사거나 외면을 받는다면 양측 모두에게 중재자 역할을커녕 불신과 비난의 대상만 될 뿐이다.
우리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북한은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남측이 미국 편에 서서는 안 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급기야는 지난 22일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면서 남·북한, 미·북 관계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남북경협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하는 동안 남북공동 연락 사무소에 있는 북측 인원을 철수시키며 보기좋게 뒤통수를 쳤다.
남북공동 연락사무소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지난해 9월 문을 연 남북관계 복원의 '상징적' 존재로, 이 선언을 바탕으로 남북한은 철도와 도로 연결을 비롯한 경제협력 사업과 군사적 긴장 제거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해 왔다.
북한의 일방적인 연락사무소 철수 통보는 그동안 청와대가 '입구'는커녕 제대로 된 '출구' 전략 하나 없이 중재자니 촉진자니 하며 떠들어대며 북한에 일방적인 러브콜을 보낸 결과물이 되버렸다.
남북한 협력을 지렛대 삼아 북한 비핵화와 미·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던 우리 정부의 '중재자·촉진자론'은 샌드위치가 돼 오도 가도 못하고 '올스톱'이 됐다.
한·미 관계는 우리가 먼 산을 바라보는 동안 '동맹'(同盟)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할 정도로 '균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 트위터에서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 철수를 통보한 지 17여 시간 만에 "재무부가 오늘 발표한 대규모 추가 제재에 대해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철회하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추가 제재 철회' 메시지는 하노이 2차 미·북 회담 결렬 이후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던 미 행정부에 제동을 건 것으로, 북한과의 협상문을 열어 두겠다는 의지를 재확인 했다.
이런 유화적인 메시지는 북한 달래기와 함께 국내 정치 상황과 관련해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현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수사하던 뮬러 특검팀이 수사 결과 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는데 그 내용과 공개 범위에 따라 트럼프는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고, 이런 극한 상황에서 북이 만일 또 다시 불장난을 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당선을 보장하기 힘들어진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다.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과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해온 미국과 북한 모두 이 이전 (以前)으로 돌아 가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나도 크다.
미국의 유화 제스처에 대해 이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화답할 차례다.
북한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인원을 철수하면서도 남쪽 인원의 잔류를 묵인한 것을 보면 아직은 판을 완전히 깨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여건이 조성되면 대화테이블에 다시 앉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흥정이 있듯이 국운(國運)이 걸린 협상에서 '힘겨루기와 줄다리기'가 있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북미 모두 대화국면을 깨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만큼 양국은 '강대강' 대치를 즉각 중단하고 협상에 복귀해 이견을 좁혀 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북한과 미국이 어떤 길을 걷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해야 하고, 이를 위한 노력이 결코 중단돼선 안 된다.
한국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단순히 '중재자·촉진자'가 아닌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불신과 무능력한 상태에서 중재자론만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될 일도 안된다. 이제 과감하게 대북정책에 현실적인 변화를 줘야 할때다.
북미간 물밑대화를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되 소득주도성장처럼 어설픈 정책 실험에 지나치게 목매달리지 말고 한미공조를 더욱 강화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된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이뤄낼 수 있다.
이제 북한도 그동안 고수해온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비핵화가 아닌 과감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반도 평화와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선(先)빅딜· 후(後)제재 완화'를 통해 경제개발과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듯이 북한은 벼랑 끝 전술도 좋지만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행동은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평화의 탑'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평화 여정이 시작되기 전보다 더 나쁜 상황을 한반도에 초래할 위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실질적이고 완전한 비핵화가 없는 경제 개혁개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여정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깝기도 멀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