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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 가야 토기가마, 창녕에서 발굴되다
기사입력 2019-11-04 15:36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김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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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고 있는 ‘창녕 퇴천리 토기가마터 발굴조사’현장을 오는 6일 오후 3시 일반에 공개한다.

이번 발굴조사는 창녕군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비화가야의 토기 생산과 공급체계 등에 대한 학술적인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유적의 보존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유적에서는 토기가마 1기를 비롯해 토취장·폐기장·배수로 등의 기능을 겸한 구덩이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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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 최대규모 토기가마 전경 ©경남우리신문 편집국

비화가야 토기가마터 조사는 1991년과 1993년 여초리 토기가마터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여초리 토기가마터 조사는 가야의 토기가마 구조와 생산체계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발굴조사로 꼽히고 있다.

이번 퇴천리 토기가마터 조사는 여초리 토기가마터 이후 28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가야 토기가마와 10여 차례의 생산 공정이 가마 천정부를 통해 완전하게 확인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토기가마는 길이 15m, 너비 2.3m, 깊이 2.3m로 지금까지 확인된 가야 토기가마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리고 10여 차례에 걸친 토기 생산과 벽체 보수 등의 공정이 가마 천정부 벽면에서 완전한 상태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가야 토기가마의 구조와 생산방법 등을 알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큰 항아리와 화로모양 그릇받침, 짧은목 항아리 등이 주로 확인됐다. 출토 양상으로 보아 큰 항아리를 전문적으로 굽기 위해 만들어진 가마이며 조업 시기는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으로 보여 진다.

창녕군은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의 하나로 고대 생산유적에 대한 현황조사를 2018년부터 실시했다. 그 결과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에 조업된 비화가야 토기가마터 6개소가 용석천을 중심으로 집중 분포하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는 당시 대규모 토기생산이 용석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을 알려준다.

한정우 군수는 “이번 퇴천리 토기가마터 발굴조사는 입체적인 비화가야사 복원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비화가야 고분과 산성 등의 조사와 함께 비화가야 유적 보존 방안을 수립하고 중요 유적에 대해서는 문화재 지정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발굴현장 공개 행사에는 관심 있는 분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므로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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