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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우리신문]우리나라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과체중을 포함하면 25%정도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 4명 중 1명꼴이며 코로나19로 활동이 제한되면서 비만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비만 치료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기’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하기 쉽지 않다. 소아청소년 비만의 원인과 특징을 알아보자.
진료실에서 매일 비만 환자를 만나지만 때때로 이들을 대하고 치료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의사로서 병을 진단하고 어떤 방법으로 치료하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때는 환자를 대하기가 편하지만, 비만은 치료 방법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비만 문제로 찾아오는 환자를 대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적게 먹기
비만 치료가 어려운 것은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 중에서도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 어제까지 두 그릇씩 먹던 밥을 오늘부터 한 그릇만 먹기로 바꾸면 되는데 불가능에 가깝다. 매일 먹던 간식을 줄이는 것도 강한 저항에 부딪치기 일쑤다. 음식 조절이 좋은 방법이란걸 알지만 실제 매일매일 실천하려면 아이들과 끼니마다 혹은 간식을 선택할 때마다 싸워야 하는 부모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식사 습관을 바꾸는 건 그 아이가 속한 가정의 생활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아이만 식습관을 바꿔서는 안 되고 부모와 아이의 형제자매까지 한꺼번에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들은 즐겁게 치킨을 시켜 먹는데 비만한 아이만 못 먹게 하는 건 지속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며 아이와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이처럼 가족 모두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적게 먹기’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이 움직이기
우리나라는 IT 강국으로 불릴 만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많이 움직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놀 때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단 인터넷상에서 만나 게임을 한다. 밖에 나가 공놀이를 하려고 해도 축구·야구·농구 클럽에 들어가야 할 수 있다. 고학력을 강요하는 시대는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가 비만하다고 해도 혹은 비만과 연관된 질병이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학원 수업을 빼가면서 운동을 시키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이들도 몸을 움직이는 것보단, 인터넷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걸 더 좋아한다. 많이 움직이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삶에 익숙한 아이를 오늘부터 갑자기 움직이게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많이 움직이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소아청소년 비만
진료실에 들어온 소아청소년의 비만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비만이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비만한 아이의 가정이 가지고 있는, 혹은 비만한 아이가 속한 사회가 가진 질병의 결과일 수 있다. 비만한 아이는 희생자일 뿐이다.
가정의 경우 아이와 부모의 관계 문제가 비만으로 나타날 수 있고, 부모의 식생활 패턴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져 비만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가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부모 모두 비만할 경우 자녀의 비만율은 54%, 부모 중 한 명이 비만한 경우 29%, 부모 모두 비만하지 않은 경우에는 18%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비만한 것은 아이지만 치료 대상은 부모, 그 가정의 문화 혹은 그 사회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소아청소년 비만을 치료하기 어렵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비만은 생물학적, 유전적, 문화적, 사회적, 진화적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여기서는 정말 단적으로 진료실에서 관찰되는 부분만 강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아청소년 비만을 바라보는 성인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소아청소년 비만 치료의 시작은 비만한 아이 자신도 노력해야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부모와 그 가족, 이차적으로는 그 아이를 둘러싼 환경, 학교나 사회에서도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60~80%가 성인 비만으로 연결된다는 강력한 증거가 많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5년, 10년 후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고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비만 치료를 위한 다양한 솔루션이 나와 있다. 수많은 다이어트 식품과 음식, 운동과 건강을 지키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익이 되는 부분에는 적극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는 눈을 감아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크푸드 광고, 학교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호식품 등에 대해서는 자유시장경제에 맡겨버린다. 아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만에 서서히 젖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비만한 소아청소년을 만났을 때 단순히 저 아이가 게으르거나 먹을 것을 너무 좋아해서 뚱뚱해졌나보다 하고 넘기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어떤 노력을 해야 아이들이 비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비만한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된다. 비만 치료가 이 아이 한 사람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글 정인혁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한국건강관리협회 2022년 건강소식 10월호 에서 발췌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