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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기념사업회 백한기 회장이 선거 유세장에서 도대체 무슨말을 하였기에
그 진실의 공방을 찾아서...
기사입력 2010-07-28 15:30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장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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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의거 기념사업회 백한기 회장     © 장두원 기자
지난 5월29일 마산 창동의 경남 도지사 이달곤 후보(한나라당)의 유세장에서 백한기 회장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였기에 시민단체로 부터 사퇴압력을 받았다.
 
 3·15의거 기념사업회 이사회에서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 정제되지못한 발언을 한것을 사과를 하게 되었는가?
 
급기야 지난 7월14일 오전 10시 30분 경남도청 브리핑 룸에서 3·15의거 부상자동지회 회장 이양수, 3·15의거 희생자 유족회 회장 오무선, 3·15의거 국가공로자회 회장 진영치, 4·19 혁명회 경남지회장 진두성 씨등 4개 단체에서 우리 3·15의거 기념사업회는 17년 전에 결성된 단체로서 그동안 3·15 국립묘지 성역화 ,3·15 의거 국가기념일 제정등 굵직한 사업들을 집행해온 국가보훈 단체로서 국가로 부터 예산을 집행받아  그 결산을 보고 하고 국가보훈처로 부터 인정을 받은 국가단체인데 물론 3·15 의거 기념사업회 회장이 공인으로서 그 당사자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장관)가 3·15의거 50주년을 맞이하여 국가기념일 제정에 혁혁한 도움이 되었다고 치더라도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 백한기 회장이 발언을 한것은 잘못되었고, 지난 6월 4일  회장단에서 공식사과를 하였고 지역 언론을 통해 서도 사과를  하고 지난 6월 16일 이사회에서 부결 처리 된것을 일부 시민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충정은 이해하나  3·15의거 기념사업회 백한기회장의 퇴진, 이사회의 해산은 물론 기념사업회 자체까지 해산을 요구하는 하는것은 우리 3·15의거 기념사업회를 무시하는 처사 이므로 앞으로 이문제로 대립과 갈등을 일으켜서는  않된다는  기자회견까지 하게된  초유의 사태까지 이르는 이 사건의 진실의 공방을 시사우리신문에서 최초로 특종으로 그 진실을 파 헤쳐 본다.
 
▶그날 5월 29일 마산 창동에 한나라당유세장에는 어떻게 가시게 되었는지요?
 
지난 5월 29일 3·15의거 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청소년 영상제에서 전국에서 30개단체에서 참가한 팀에게  UCC 심사상을 주고 영상을 보았습니다. 480명이 입장하는 소극장에 무려 650명이 입장하여 복도에까지 사람들이 들어찬 가운데 절찬리에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어요.
제가 집이 신마산이기 때문에 창동 코아 양과점 앞으로 지나가야 하는데 마침 그때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 이달곤 후보가 연설을 하고있어 길이 막혀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유세구경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달곤 후보를 지지하는 유세를 하게 되었지요?
 
저는 평소에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장돤)씨에게 많은 은혜를 입어 항상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아니 였다면 (이달곤씨를말함) 3·15의거50주년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지 못할뻔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고마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때 50대 초반의 신사가 다가와 “이달곤 후보 지지  연설을 해줄 수 없느냐”고 묻길래  “ 선거법이 얼마나 엄한데 신분증도 없이 연설을 할 수 없다고” 하자 그분께서 선거법이 개정되여 일반인 아무나 올라가서 연설을 할 수 있다고 하여 “그럼 ! 마산시민 개인 자격으로 연설을 하겠다”고 하고 5분에서 6분정도 연설을 한것 같습니다.
 
▶무슨 내용의 연설을 하셨나요?
 
한나라당을 지지 하는 등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은 없고, “우리 마산시민은 3·15의거 50주년을 국가 기념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달곤 후보를 결코 잊어서는 안되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목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제가 썩어가는 우리 마산 이라고한것은 정말 잘못된 표현입니다.(최근 마·창·진 통합으로 과거 7대 도시의 영화는 어디로가고 날로 쇠퇴해가는 마산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 한다고 한 것임) “민주 성지 마산시민으로서 자존심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마산시민의 자존심을 지켜준 분이 바로 이달곤 후보다. 우리는 이분에게 감사해야한다.” 대충 이런 요지의 발언 이였지요.
그런데 이 기사가  언론에 나가자 난리가 났어요.  3·15기념사업회 회장이 한나라당 선거 홍보요원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 정제되지 못한 발언을 한 것을 깊이 사과한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사실 제가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제정함에 있어 국회결의안은 국회의원 294명중 의장을 제외한 293명 국회의원 전원이 찬성하여 본회의를 통과 했으나 정부에서는 서로 회피하고 미루고 있고 , 막바지에 접어들어 올 2월초 4·19혁명회를 비롯한 관련 3개단체 (4·19혁명회,4·19유족회, 4·19 공로자회)가 연명으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국가보훈처와 정부요로에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는것을 극한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참으로 난감 했습니다.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15의거가 우리나라 만주화 운동의 효시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3·15가 국가기념일 이 되면 4·19의 우상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3·15의거를 국기기념일로 제정한다면 4·19의거 기념 50주년 행사를 보이콧함과  아울러 정부에 대립의 각을 세우겠다는 요지의 공문을 발송함으로서 가득이나 국가보훈처가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제정 하는 것 을 반대하고 있던차에 국가보훈처는 국가기념일 행사가 한 개라도 늘어가면 자기들의 업무가 늘어나는 관계로 “얼씨구나 좋구나”하고  반대를 했던 것이지요.
그로 인해 차짓하면 국가기념일 제정이 지하에  묻힐뻔 했지요.
(국가기념일은 법률로 제정이아닌 대통령 령으로 국무회의에서 상정  심의하여 공포를 하여야 그 효력이 발생함)
누가 국무회의에 상정을 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때 마침 이달곤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이 3월2일  국무회에 상정시켜서 10일간의 입법 예고기간을 거쳐 마침내 3·15기념식행사를  사흘앞둔 3월12일 대통령 령 제 22074호 로 그 효력이 발생하여 3·15기념 50주년 기념 행사를 국가에서 주관하여 행사를 치루게 되었지요.
백회장은 이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까지 표현 했다.
그때 당시 백회장은 3·15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제정이 되지 못하면 국가보훈처 주무 담당 과장과 백회장은 같이 마산 앞바다에 빠져 죽자고 까지 말했다고 한다.
“저 말없는 고요한 가고파의 바다가 요동을 치면 정권을 두 번이나 바꾼 사실이 있는데 만약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만들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까지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행정안전부장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국가기념일 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시켜서 3·15의거가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게  되어 평소에 그 고마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차에
예정되지 않은 곳에서 평소의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준비된 원고없이 즉흥적인 말을 하다보니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의 본인의 행위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우리 단체와 피해를 입은분들이 계신다면 대단히 미인함을 전하면서 거듭 사과를 드린다는 유감을 표명했다. 
햇수로 3년, “그동안 저는 우리 사업회의 목적인 의거정신을 계승 발전 시키고 나아가서 3·15의거의 역사적 가치와 의거정신을 전국민들에게 고취시키기 위해서 3·15세대의 한사람으로서 이한목숨 바친다는 각오로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여유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뜻하지 않은 우를 범하게 된것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일을 거울 삼아 단체장으로서 저는 앞으로 신중하게 처신 할 것 을 여러 이사님 앞에 약속 드리고자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사태가 마무리 되었습니까?
 
아닙니다.제가 6월4일 회장단 회의에서 저의 정제되지발언을 깊이 사과를 했지요.
그 자리에서 부회장들은 저의 해명을 듣고는 “물론 감사하다는 표현 방식이 잘못 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삼아 3·15기념사업회의 발전의 계기로 삼야 한다”고 말씀 해주었습니다.
그후 6월16일 3·15기념사업회 정기 이사회를 개최 했습니다.
우리 사업회는 총 86명의 이사가 있습니다.
그중 17명이 위임하고 나머지 51명이 참석하고 8명이 불참 했습니다.
그 이사회 회의를 마치고 제가 기타 토의사항에서 또다시 저의 잘못된 발언을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장단에서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저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하면 사퇴를 하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때 신문,방송기자등 다수의 언론인들이 있었지요. 이때 이은진(경남대교수 경남발전연구회회장) 이사가  “회장님 여기 많은 언론인들이 계시는데 회의를 공개로 할 것인가, 비공개로 할것인가?” 를 물어와 나는 “어차피 언론에 다 알려진 사실이고 매를 맞을 만큼 맞았기 때문에 공개냐 비공개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사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반대20명 찬성 23명으로 비공개 로 회의를 하기로 하여 언론인들이 퇴장한 가운데 회의를 속개를 했습니다.
이때 정성기(경남대 교수 부·마 항쟁 기념사업회 회장) 최갑순(동 사업회 부회장) 진이호 (동 사업회 부회장)
이 세 사람의 반대가 제일 심했지요.
다른 이사 등 7명의 이사가 “회장님! 저희들도 이사를 그만 둘테니 저희와 함께 동반 퇴진을 합시다.” 라고 요구하고는 회의장을 퇴장 했지요.
제가 이사회의 의견을 물어 저의 퇴진은 부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이의 없습니까?” 하고 다른 이사들의 의견을 개진 한 후 방망이를 세번 두들기고 저의 퇴진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는데  그 다음날 D일보에는 ‘백한기 회장 사퇴거부’ K신문에는 ‘회장 유임’으로 보도가 나갔습니다.
 
▶끝으로 백회장께서 하실 말씀이 계신다면.
 
저의 뜻하지 않은 정제되지않은 발언으로 심려를 까쳐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3·15기념사업회가 거듭 태어나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단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립니다.
 
이제 이사태의 진실은  다 밝혀졌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편 가르기나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3·15기념사업회 이사회의 결정을 존중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않는 지루한 공방에서 벗어나 모두가 화합하고 단결하는 이 길이 3·15 영령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며 민주성지 우리 마산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임을 다 같이 명심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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