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근대 문물 제도 수용한 고조 광무제
기사입력 2010-09-25 16:19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김민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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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홍영식이 보빙부사(報聘副使)로 미국을 방문,시찰하고 미국의 우편제도를 고조 광무제에게 건의하여 1884년 3월 군국사무아문(軍國事務衙門) 안에 우정총국이 설치되었다.전의감(典醫監) 터에 우정총국 청사를 두고, 우정총관 홍영식(洪英植)이 일련의 법령을 준비하는 등 개국 준비를 하여 1884년 10월 1일부터 우편업무를 시작했다.
1885년(고조 22년) 갑신정변 때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閔泳翊)이 개화파 인사들에 의해 치명적인 자상(刺傷)을 입었고 미국인 알렌이 민영익을 살려냈다. 고조 광무제는 알렌을 어의로 임명하고, 2월 29일 한성(漢成)의 재동(齋洞)에 활인원(活人院)과 혜민원(惠民院)을 개편해 서양식 근대 의료 기관인 광혜원(廣惠院)을 설립하도록 윤허하였다.
광혜원(廣惠院)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 소속되어 있었고 광혜원의 원장은 광혜원당랑(廣惠院堂郞)으로 불렸으며 1885년 3월 12일 제중원(濟衆院)으로 개칭하였다.1899년 4월에 설립된 내부병원(內部病院)은 1900년에 광제원(廣濟院)으로 개칭되었고, 1907년 3월 광제원이 폐지됨에 따라 대한의원(大韓醫院)으로 이관되었다.
1887년 3월 6일 저녁 건청궁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점화되었는데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석탄을 연료로 발전기를 돌렸고 16촉 광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발전기 설치·전등 가설은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윌리엄 멕케이가 맡았다. 1897년, 한성에 전화기가 설치되었고 당시 전화는 덕률풍 또는 득률풍, 전어기 등으로 불렸으며 1902년 한성과 인천이 전화로 연결됐다.
1898년 1월,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였고 1899년 5월 4일 명성황후 홍릉(洪陵) 행차를 위해 돈의문-흥화문-종로-흥인지문-홍릉을 운행하는 전차(電車)가 개통하였고 전차에 전기를 공급할 동대문발전소를 설립하였다.전차의 개통은 대한제국이 아시아에서는 최초였고, 전차 승객이 많아지자 노선이 증가했으며 전차의 운행시간은 6시까지 였고 남는 전력을 이용하여 거리에 전등을 설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