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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중국 정부에 간도 영유권(領有權)을 주장한 적이 없다.
기사입력 2010-09-25 16:41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김민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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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칼럼니스트     ©경남우리신문편집국
[경남우리신문]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897년 10월 12일 백악(白嶽:북악산)과 목멱(木覓:남산) 사이의 경운궁(慶運宮) 대안문 앞 환구단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올리고 초대 황제에 등극하며 천하에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므로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 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는다고 천명하여 조선시대에 이어 대한시대가 시작됐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은 한반도 간도(間島) 제주도 동해(East Sea) 독도(Dokdo)를 비롯한 인접 도서,해양을 통치하고 태극기(太極旗),애국가를 상징으로 하며 북으로는 말갈(靺鞨:간도)의 계(界)를 다하여 상아와 가죽을 생산하고, 남으로는 탐라(耽羅:제주도)을 거두어 귤과 해산물을 공(貢)받은 대한제국은 제주에서 간도까지 남북으로 4천리 영토를 통치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이범윤(李範允)을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임명하여 간도(間島)를 직접 관할,통치하였으며 1905년 11월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체결 비준하지 않아 불법, 무효인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1909년 9월 4일 불법적으로 청과 간도협약(間島協約)을 맺고 대한제국령 간도의 영유권을 청에 불법 양도했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910년 8월 경술늑약(庚戌勒約)으로 일제에 불법 병탄되었으며 3·1 대한광복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13일 한민족사 최초로 주권재민, 삼권분립을 선언한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수립되어 1945년 8월 15일 대한 광복까지 대한광복운동을 펼쳤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대한국(大韓國)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아 1910년 경술늑약(庚戌勒約)으로 불법 병탄(倂呑)당한 대한국(大韓國)의 국권을 회복하는 대한 광복(光復)을 하였고 1948년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대한국의 평화통일운동으로 2010년까지 계승되고 있다.

간도가 대한제국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중국 정부에 간도 영유권(領有權)을 주장한 적이 없다. 일제와 청의 간도협약(間島協約) 체결은 무효이므로 국회는 간도협약의 무효를 결의해야 하며 정부는 간도협약의 무효를 천명하고 간도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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