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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삶의 주인공]셀플란트 성제경 원장
“신이 주신 제2의 인생,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기사입력 2010-10-05 10:24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경남우리신문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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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삶의 주인공]“신이 주신 제2의 인생,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반신 마비 불구 왕성한 의료 및 봉사활동 펼치는 셀플란트 성제경 원장 2010100527411043.jpg▲ “신이 주신 제2의 인생,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위해 살겠습니다”셀플란트 성제경 원장     © 경남우리신문편집국14년전 지역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성제경 치과 병원 원장. 난(蘭) 채취를 가던 중 자동차가 절벽에 떨어져 하반신 마비와 오른팔 뼈가 수십 조각으로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담당 진료 의사는 “7년을 살기 힘들다”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2년간의 투병생활은 말 그대로 생과 사를 넘나들기 일쑤였다. 하반신 마비는 회복하지 못했고, 오른 팔은 수 십차례 대수술을 거쳐 활동에는 지장이 없게 됐다. 퇴원직후, 그는 곧바로 치과를 개원했다. 그를 기다리는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 원장은 진료가 비는 짧은 시간에도 쉬지 않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기실을 찾아 환자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비록 휠체어 신세를 져야하지만 그에게선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하나님이 주신 제2의 인생이기에 촌각의 시간도 허비할 수 없다. 오직 그에겐 환자와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 밖에 없는 보인다. “장애인들이 당당하게 사회속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정계진출이다. 제도권 속에 진입해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안배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다. 성 원장은 최근 큰 사고를 칠 계획을 하고 있다. 경남 지역의 저 소득 장애인에게 무료로 의치와 임플란트를 시술하는 것. 신이 주신 제2의 인생이기에 신의 뜻에 따라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봉사하는 게 당연하다는 성 원장을 만나봤다.
 
■먼저 성 원장님이 살아오신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특히,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의 꿈이 무엇이었고 그 꿈을 위해 어떻게 하셔서 성공한 의료인이 되셨는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유아시절을 보냈죠. 누구나 작고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이랄 것 보다는 정통종합영어란 책에서 숙어를 공부하면서 ‘Do your best'(최선을 다하라)란 문장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문장이 지금까지 나에게 인생의 지표가 되었죠. 그때부터 어디서든 어떤 환경에서든 최선을 다하자는 일념으로 살아왔습니다. 몸을 다쳤을 때에도 이 문장이 버팀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치과의사를 하게 된 것은 일종의 가업으로 보시면 됩니다. 집안 어른께서 병원을 하셨으니, 저도 당연히 의사되어야 하는 가보다 여겼죠. 의사는 부를 축적하기보다 신의료지식을 접하고 환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 성취감을 느꼈고, 고난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고 봅니다.
 
■치과 개원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데, 그때 장애를 얻으셨는지요.

-지금도 생생합니다.(성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는 게 힘들었는지 한참동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1996년 6월 30일 주일날 예배마치고 난(蘭) 채취하기 위해 진해쪽으로 가다가 차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되고 오른쪽 팔 뼈가 으스러져 조각이 났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죠. 당시 병원에선 7년이상을 살기 힘들다는 시한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2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투병생활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것이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과 저와 가정,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을 소중히 여긴 것이 극복한 힘이 되었죠. 저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신념이 재기를 할수 있는 에너지가 된 것입니다. 병상에서도 환자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시라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입원기간 동안 신의료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전공서적을 한시라도 손에서 떼지 않고, 선후배와 전화로 정보교류를 하는 등 몸은 병상에 있었지만, 마음과 생각은 환자와 늘 함께 했습니다. 1998년 6월 24일 퇴원직후, 토월 주상가에 예은치과라는 간판을 걸고 재 개원해 진료활동을 펼쳤습니다. 주상가를 택한 것도 엘리베이트가 있는 곳을 찾다보니 인연이 된 것이죠.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들입니다. 원장님께선 어떻게 극복하셨고, 같은 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은요.

-정상인이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안경 착용도 장애지요.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정신적 장애, 탈모도 장애 아닙니까. 이렇듯 그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죠. 저 경우만해도 장애인이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치매나 뇌출혈등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장애인되는 거죠. 예비 장애인라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선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장애인도 ‘나만 왜 이런가’하는 생각보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있을 것이란 생각과 폐쇄적이기보다 오픈된 마인드로 정상인 틈에 합류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올해 27세인 호주의 닉 부이치치는 사지(四肢)가 없는 선천성 장애인이지만 골프, 수영등 못하는 게 없을 정도여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딸애가 초등학생때 장애를 당했는 데,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고 방에 누워 있으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긍정적으로 사고했기 때문에 100%는 아니더라도 그 반을 달성할 수 있었죠. 장애인도 ‘나만 왜’하고 자책하지 말고 ‘당신도 그럴수 있다’는 식으로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역시 비장애인도 ‘나도 그렇게 될수 있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받아줘야 하죠. 수혜자와 제공자가 아무 조건이 없어야 되지. 시혜방식이 되어선 안됩니다. 장애인도 적극적 이어야 합니다. 집밖으로 나가다가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야죠. 닉 부이치치는 넘어져 일어날 때 머리를 땅에 딛고 반동을 줘 일어나는 데 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런 그는 지금 골프도 치고 수영도 합니다. 저 역시도 일어설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 인터뷰도 가능한 겁니다.
 
■최근 들어 보건복지여성부에서 장애인에 대해 장애등급 재조정 및 활동 보조 재조정을 실시해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원장님께선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개선을 해야지 개악을 해서 안됩니다. 이번 정책은 눈감고 아웅하는 격에 지나지 않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 데, 단지 예산 줄이겠다는 것은 ‘만만한게 장애인’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시절엔 LPG 가격 올려 장애인들의 분노를 샀는 데, 현 정부에서 또 이런식이면 안됩니다. 장애인의 유형과 등급에 맞는 재활 및 직업 교육을 시켜줘야 합니다. 사회에 부담이 되는 장애인이 아니라, 스스로 경제활동을 통해 떳떳한 사회구성원으로 한 몫 할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하셨는 데, 정계 입문을 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뱃지를 달았다면 어떤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하실 계획이었습니까.

-퇴원 후, 치과에 출근하기 위해 토월 주상가 엘리베이트에 탔는 데 정상인들이 짐짝 취급을 당했습니다. 1층에서 지하2층 내려가는 고객들이 휠체어를 함부로 밀치고 카트를 들이밀더군요. 참 암담했지요. 명색이 치과의사인 내게도 저런데 일반 장애인들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혼자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아침 일찍 택시와 버스를 타고 마산 진해를 12시간 동안 다닌 적 있는 데, 그날 ‘감사합니다’란 말을 몇 번 했는 지 아세요. 350번까지 세고 지쳐 그만 뒀었죠. 그때 ‘장애인이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지’ 암담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얼마 전 한 장애인이 휠체어로 엘리베이트 문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현 사회의 시각입니다. 장애인들에게 생선을 주기보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정계에 진출하고 싶었습니다. 정계에 진출하면 장애인도 국방의 의무를 제외한 3대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줄 것입니다. 선진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누군가 제도권내에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장애등급도 확실한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장애인 전용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 사람 몇 명이 장애인인지 한번 지켜봐 보세요. 법이 법답게 집행되어야지 알리는 수준이 되어선 안됩니다. 지켜지지 않으면 벌을 받는 다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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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아치료 하는 성제경 원장     © 경남우리신문편집국

■지난 2008년 1월 북한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의료봉사활동을 펼치시고, 현지 의사들에게 최신 의료지식을 전수해주셨는 데, 북한의 의료실태는 어떠했는 지요.

-솔직히 잃어버린 10년 좌파 10년이라고 하는 데, 사회주의가 어떤지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전교조나 민노당은 북한의 전인민이 고루 의료혜택을 받는 다고 하는 데, 의료혜택은 커녕 약 한첩 사먹는 것도 소위 말하는 ‘빽’이 있어야 가능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평양의과대 적십자 시골 병원의 치과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용했음직한 이발소 의자를 놓고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페니실린 등 항생제도 맞을 수 있는 사람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한국서 보내준 신장투석기도 먼지에 쌓인 그대로였습니다. 이런데도 좌파 성향의 한국인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죠. 아마도 그 사람들 북한에서 일주일도 못 살고 겁니다.
 
■지난번 국회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가 야당 의원들의 집요하고 거센 검증에 자진사퇴하고 말았습니다. 잦은 거짓말이 요인이 되었는 데, 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공직자의 품위와 덕망은 무엇인지요.

-청백리가 무엇인지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김두관 경남지사께서 4대강 정비사업 반대 입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생태복원네트워크 상임대표인 원장님께선 김 지사의 반대 행보에 어떤 충고를 하고 싶으십니까.

-김지사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도정은 정치가 되선 안됩니다. 도민을 위해 도정을 펼쳐야지 자기 정치활동의 기반으로 삼아선 더 더욱 안되죠. 정치활동을 하려면 도지사직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330만 도민의 복리증진을 위하는 것이죠. 국책사업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도지사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보입니다. 과거 수해복구비나 인명 손실로 인한 예산 낭비를 감안해 시행하는 것이 4대강 정비사업 아닙니까. 진정 강을 살리는 사업이라면 김두관 지사는 도민과 국민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보 설치가 안된다면 청평댐이나 소양강댐, 안동댐도 헐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대구 신천에는 수달이 돌아오고, 울산의 태화강에는 연어가 올라온다고 합니다. 강을 살리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2012년 이후, 지류 정비사업까지 마치면 남해안 일대의 적조 현상도 대폭 감소되어 양식어민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겁니다.
 
■끝으로 경남 도민과 장애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장애를 가진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행동하고, 정상인들은 장애인을 이해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장애인들도 우리의 몫을 당당히 찾을 수 있는 유권자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분산된 모습을 보여주면 위정자들이 업신여긴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는 가.성 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찬송 502장의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함께 하시리라”를 낭송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수십번 대수술을 거친 오른 손으로 환자를 돌보는 그의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수 있었다. 그는 부인과 1남 1녀의 자녀와 함께 하나님의 주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경남도내 저소득층 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의치와 임플란트 시술을 해주는 게 그가 지금 당장하고 싶은 봉사라는 말을 남기고 1시간여 걸친 인터뷰를 맺었다.
 
-주요 프로필-
한나라당 중앙당 장애인위원회 수석 부위원장
한나라당 경남도당 장애인위원장
경남파파 합창단 단장
셀플란트 치과 원장
 
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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