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는 산 자의 기억 속에서 살게 되지요
기사입력 2011-10-21 13:46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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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에는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5월 단오(5일)와 7월 칠석과 함께 중일(重日)의 대표 명절인 구양절(음력 9월 9일)은 오늘날에는 지내지 않는 옛날 명절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중양절에 추석에 성묘를 하지 못한 경우나 제삿날이 명확하지 않은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데 시기적으로 “시절 좋은 때”인 결실의 시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전쟁과 가난과 민주화의 시기를 겪어오는 동안 생사를 알길 없는 사람들은 산 자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추수철 한 상 가득 받은 것으로 세상에 못 다한 한을 풀어야만 한다.
"조상에게 싱싱하고 큼직한 생선을 올려드려야지 복 받지." 제사상에 올릴 생선은 꼭 자갈치에 오셔서 구입하신다는 김모(76세, 여, 주례동)할머님께선 만주에 가신 후 생사를 알길 없는 시아버님 기일을 중양절에 지내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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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과 바람이 곡식을 여물게 익히는 동안 부산의 명소인 자갈치 시장엔 이른 아침부터 싱싱한 생선과 건어물을 장만하러 온 사람들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부산을 찾은 외국인부터 여러 도시에서 온 관광객과 제수용품을 장만하러 온 사람들, 소금기 밴 바다 냄새와 간이 밴 찬거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과 자갈치 아지매들의 흥정소리가 생동감을 더한다.
즐비하게 놓인 좌판을 두고 생선을 손질하는 아지매들의 모습이 이제는 희끗 희끗한 흰머리와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는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억척스럽던 우리네 어머님의 삶도 자녀들이 성장한 만큼 세월과 하나 되어 가는 듯하다.
“아지매, 고기비늘도 쳐 주고 소금도 구석구석 쳐 주이소.” 고기비늘을 쳐 내는 능숙한 할머니의 손놀림과 주머니 속 반듯하게 접어놓은 지폐를 건네는 손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듯 정겹다. “아지매, 오래 오래 건강 하이소. 그래야 다음에도 사러 오지요.”
흐르는 세월처럼 사람의 인연도 그렇듯 흘러가는 듯하다. 이렇듯 서로를 기억하는 한 그 기억 속에 사람은 살아가게 되는 듯하다. 망자의 삶도 산 자의 기억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제비는 3월 삼짇날에 왔다가 중양에 강남으로 간다고 한다. 망자는 자신의 기일에 산 자를 찾아왔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잃어버렸던 누군가를 깊이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기억하고 섬기는 사랑, 제사 또한 살아있음을 깊이 감사하는 삶의 연장선임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