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왕성, 1500년의 베일을 벗다
기사입력 2018-06-07 10:52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신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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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함안군 담당직원이 토성 하단부 일부가 노출된 것을 확인하고, 긴급 관계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긴급발굴조사를 의뢰, 5월 중순경 발굴조사에 착수하여 왕궁터를 확인했다.
조사결과 대규모 가야토성이 완연한 형태로, 토성 위로는 뚜렷하게 열을 지어 늘어선 목책과 내부 건물터가 드러났다.
그동안 문헌이나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였다.
왕성이 발견된 함안군 가야리 일원은'함주지'와 '동국여지지'등 고문헌과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아라가야 왕궁지로 비정되어 온 곳이다.
이러한 기록을 증명하듯 왕성을 둘러싸고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필동고분군’등의 중대형고분군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라가야 최대의 고분군인 함안말이산고분군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는 ‘신읍’, ‘대문천’, ‘이문’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왕성 또는 왕궁이 이곳에 위치했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함안군에서는 2013년 이곳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왕궁지 주변에 대한 조사 및 문화재지정을 추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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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확인된 아라가야의 왕성은 그동안 가야왕성으로 알려져 온 김해 봉황동유적, 합천 성산리토성, 고령 대가야왕궁지 유적과 비교할 때 그 잔존상태가 가장 완벽하고 그 규모에 있어서도 단연 돋보인다.
확인된 토성의 규모는 높이 8.5m, 상부 폭은 20m∼40m 내외로 동시기 가야권역에서 최대이다.
또한 축조기법도 흙을 쌓는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축조 공정마다 나무기둥을 설치한 점, 판축 과정에서 흙을 쌓아 다지는 등의 양상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가야성곽은 물론 우리나라 고대 토성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단서로 여겨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을 방문했던 창원대학교 남재우 교수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아라가야는 가야를 대표하는 나라로, 왕이 존재했으므로, 주변의 유적분포와 경관을 고려할 때 확인된 토성을 ‘왕성’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러한 왕성의 존재는 아라가야의 국가발전단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며 백제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신라의 왕경 등과의 비교를 통해 아라가야의 사회구조와 통치형태 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고 밝혔다.
또한 남 교수는 토성의 정확한 성격규명을 위해 발굴조사 지역을 확대하여 계속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고,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 보존될 수 있도록 문화재 지정 등의 행정조치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일석 권한대행은 “왕성의 발견이 가야 전 시기를 거쳐 강국으로 자리 잡았으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라가야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기쁘다.”며 “향후 문화재청 및 관계전문가들과 협의하여 왕성의 조사연구 및 보존방안을 수립하는 한편 가야사의 대표지역으로서 아라가야 왕도의 역사와 문화를 규명, 회복하고 함안의 미래유산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관련 공공기관 및 학계와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오는 6월 말에는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말이산고분군의 최대분인 말이산 13호분이 일제강점기 유린 이후 100년 만에 재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아라가야 역사의 진정한 복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