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강제 징발 피해액 11억 3311만 4096환
기사입력 2018-11-20 15:18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노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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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은 거제시가 경상남도기록원에 보낼 기록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군 징발관계 서류철-피징발자 피해 조서’라는 문서를 찾으면서 확인됐다. 1955년 12월 20일 거제군수가 경상남도내무국장에게 보낸 문서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엔군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피징발자의 피해를 보상해 줄 것을 요청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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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955년 10월 29일 내무부 차관의 재조사 지침에 따라 읍면별로 공공과 민간 소유로 구분해 피징발자들의 성명, 주소, 피해규모 등을 자세히 조사하여 총 2권 583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적으로는 1차 1951년 1월부터 6월까지 유엔군 제1포로수용소, 2차 1952년 5월 말부터 8월까지 500명 단위의 수용동 확장 건설, 3차 1952년 6월부터 9월까지 제1A 저구리포로수용소 건설 등에 따른 피해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고현동을 비롯해 수월동, 장평동, 남부면 저구리, 연초면 송정리 포로공동묘지 일대 토지와 동산, 가옥 등을 미군이 강제 징발해 수용소를 건설한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다.
문서에 담긴 피해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은 학교 교사 13동, 공공시설 7동, 주택 3,279동, 창고 7동으로 모두 3,306동이다. 토지는 논 191만 7,938평, 밭 44만 5,900평, 대지 17만 4,161평, 임야 496만 5,641평, 죽림 3,230평으로 모두 750만 6,870평이고, 동산은 1,198건으로 건물, 토지, 동산의 전체 피해규모는 756만 5,595평으로 피해금액은 모두 11억 3,311만 4,096환이다. 지금 돈으로는 약 1,1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전갑생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이 문서는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 전체 규모뿐만 아니라 포로수용소 규모, 설치 장소, 징발품목, 물가상황 등 당시 포로수용소 현황과 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면서 “거제시가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목록에 등재함과 동시에 국가지정 근대기록물로 등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거제시는 이 문서를 오는 12월 4일 거제시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공동주최하는‘한국전쟁기 미 발굴 사진영상전’에 처음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거제도포로수용소는 1950년 12월 부지를 확정하고 1951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했으며 1953년 4월과 9월 두 차례 걸친 포로교환 뒤 단계적인 폐쇄를 진행하다 1954년 8월 5일 유엔군사령부가 국방부에 모든 소유권을 이양했다. 1954년 8월 14일 국방부는 사회부에 수용동 건물 785동과 잔여 100동을 상이군인자활입주용으로 사용한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11월 1일 사회부는 국방부와 다시 협의해 수용동 885동 중 172동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수용동 172동은 석조건물 46동과 토조 건물 126동으로 모두 농민복귀정착사업용으로 사용됐다. 수용소 건설 과정에서 강제 소개된 주민들은 1954년 7월말부터 소개난민복구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협상을 벌여‘농민복귀정착사업용’건물 172동과 보상금 1억 1,000만환 정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