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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도 광복 70주년에 맞춰 ‘평화의 소녀상’ 시봉식을 가졌고 전국 유일 창원시만 제막식이 지연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창원시 오동동 '위안부 소녀상' 도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인권자주평화 '다짐비'란 이름으로 제막식을 개최해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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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는 진보성향을 가진 건립추진위 5명에게 휘둘려 시민들이 편히 쉬어야 할 휴식공간을 내어 주고 대신 소녀상을 세웠다. 결의에 찬 눈빛으로 오동동 음주가무를 즐기게 했던것. 경건한 장소를 원했던 일부 시민들과 상인들은 안상수 창원시장의 공권력에 힘없이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에 본 기자는 지난 2일 오후 청주시 청소년인재양성과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창원시는 시민들의 의견보다 소수 의견을 중요시 했지만 청주시는 소수의견과 시 행정에 서서 업무를 진행했다.
창원시민 여러분! 창원시 행정의 현 주소입니다.청주시는 다릅니다.
청주시 관계자는 "시에서는 위안부 소녀상 위치선정을 두고 좀 더 적합한 장소를 제안했다. 그런데 추진위가 원하는데 장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어 조금은 곤란한 상황이 됐다. 어떤 부지든 간에 저희가 제공 할 부지가 있고 시에서도 협의 점을 찾고 있다"며"지금도 추진위는 계속 그 장소를 원하고 있는 상태고 꼭 그 장소만을 원하고 있다. 추진위는 시가 소녀상 건립을 반대 하는 쪽으로. 반민족 이란 표현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래도 시는 적합한 부지를 찾고 있다. 조만간 협의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는 소녀상 장소이전과 관련해 창원시 담당 공무원에 문의 하자 "현재까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더 이상 듣고 싶은 이야기도 없고 묻고 싶지 않았다.
목적만 달성하고 나면 끝 인가? 이제 국제적 망신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과제만을 남겨 두게 됐다. 결국 이 과제물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들의 소관도 아니고 창원시 소관도 아니다. 창원시민들이 음주가무 한 복판에 세워진 소녀상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본 기자는 오동동 위안부 소녀상이 다른 장소로 옮겨져야 하는 이유를 정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빗댄 칼럼을 게재한 일본 산케이 신문 사설 망언을 보면 어떠한가! 일본이 또 다시 제국주의 사상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언제든 무력충돌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변했다.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 신문이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다시 담을 수 없는 망언과 치졸한 역사관 그리고 일본의 군사적 목적을 여실히 보여준 사설을 게제했다.얼마나 치욕적인가.과거 명성황후 시해를 한 것에 대하여 사죄는 한마디 없이 민비라 격하한 글과 명성황후의 윤간 살해한 암살에 대하여 빗댄 대한민국 대통령을 거론한 것은 매우 심각한 도발적 망언이다. 암살을 운운한 것은 일본이 언제든지 도발 할 수 있다는 망언 아닌가.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의 뼈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약속을 담은 인권자주평화 '다짐비'를 오동동 술집거리 한복판에 세우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38명, 그 가운데 2015년 8월말 현재 191명이 사망했다.
지난 7월 5일, 16살이란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게 아픔을 당했던 최금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목욕을 하러 친구 집에 가다가 강제로 붙잡혀 중국 하얼빈에서 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우리 아픈 역사의 증인이셨다. 지난 6월에는 김외한, 김달선 할머니가, 그리고 7월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세상을 등졌다. 이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존자는 총 47명(국내 43명, 국외 4명)이지만 공식 집계되지 않은 할머니들의 숫자는 등록한 할머니들의 숫자보다 수백 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안부 소녀상이 인권자주평화 다짐비로 둔갑해서 국제적 망신을 시키려고 작정했어. 할머니들을 여기다 왜 모셔났어"
다짐비 제막식 1시간 전 인 지난 8월 27일 오후 3시 마산합포구 정보과 경찰이 "망치 빼세요."라고 말하자 한 보수 단체 대표가 "뭘 빼요. 놔~ 니들 뭐야. 정체를 밝혀봐. 뭐야~"라고 말해 충돌이 발생됐다. 정보과 경찰은 "불법 시위 물품 아닙니까."라며 오함 마와 망치를 압수했고, 이 과정에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차분히 성명서 발표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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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국민운동대연합 오천도 대표가 제막식을 준비하는 관계자들과 시민들에게 "이건 친일파 보다 더 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야"큰 소리로 말하자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당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건립위원장인 김종대 시의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부지확보자문위원으로 이름을 명시한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경남본부 상임의장도 침묵했다.
특히 그는 건립추진위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으나 제막식 현장 책자에는 공동추진위원장에 이름이 삭제되어 정체성이 무엇인지 논란을 부추겼다.
성명서 발표를 마친 오천도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시민모금으로 한 건데. 역사 앞에는 보수진보가 따로 없고 좌익우익이 없다. 일본 문제만은 다 같이 안고 가야 하는 문제다"라며"입지장소가 잘못됐다. 제가 옮겨야죠. 소녀상을 내려칠 순 없고 보도블록을 파헤쳐 뽑아서 옮겨야 겠다.10일의 여유를 주겠다.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제 스스로가 처리 하겠다.국제적 망신 톡톡히 하겠죠."라고 장소 이전을 강하게 요구했다.
일본군 '위안부' 세상에 알려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자신이 당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관여 사실을 부인할 뿐 아니라 관련 자료와 증거들을 은폐하고 파기한 상태에서 생존자들의 출현과 증언은 일본군의 만행을 밝히는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그 해 12월 2일에는 대구에서 문옥주 할머니가 두 번째로 공개 증언을 했다.
1993년 고노 담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
고노담화: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의 관여를 확인하는 한편, 위안부 모집·이송·관리 등에서의 강제성과 위안소 생활의 참혹함을 인정하고 사죄·반성의 뜻을 표명한 담화
2015 인권자주평화 다짐비 제막문화제 참가자 결의문 본문
우리는 오늘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의 뼈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약속을 담은 '인권자주평화다짐비'를 세웠다. 억울하고 원통한 피해자의 영령앞에서,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피해생존자 할머니들은 생각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다.
일본군'위안부'문제가 해결되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짓밟힌 인권과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우리는 할머니들의 아픔과 함께 할 것이며, 역사의 교훈인 인권과 자주, 평화의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지킬 것이라고…….
인권자주평화 다짐비를 이곳에 세우는 의미
일제강점기 마산은 일본군 '위안부'강제 동원을 위한 전진기지이자 중간 집결지였다. 이 일대는 일제 강점기 주민운동의 썬터였던 마산민의소,가종 혁신정당과 사회단체가 있었으며,해방후 3.15민주의거, 부마항쟁,6월민주항쟁등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들이 일어난 곳으로서 창원지역 그 어느 곳보다 역사성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일본군'위안부'로 참혹한 고통을 겪은 피해자를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하고 결연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꽉 쥐고 있는 두 손은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며 천은 한과 희망,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의미다.
정신대 vs 위안부 vs 성노예 vs 오동동 위안부 소녀상인 인권자주평화 '다짐비'
정신대는 ‘일본을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 라는 뜻으로 인력 동원을 적극적 으로 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용어이다. 현재 공식명칭은 일본군 '위안부'이며, 최근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는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용어와 함께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일본군의 조직적이고도 강제적인 동원 사실을 설명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가 가해의 주체인 ‘일본군’을 명기하고 있으며, 일제가 ‘위안부’라는 단어를 만들고 ‘위안소’를 제도화했던 당대의 특수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역사적 용어라는 점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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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위안부 ,성노예, 평화의 소녀상 오동동 위안부 소녀상은 다른 지자체와 달리 인권자주평화 '다짐비'로 사용했다.
소녀상을 ‘다짐비’로 세운 의미는 참혹한 고통을 겪은 피해자를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하고 결연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표기됐다. 그래서 오동동 술집 한복판 중간에 세웠다. 더 많은 과거의 아픔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오동동 일대에 더 많이 세워져야 한다는 한 익명의 사설을 봤다.
아프고 슬픔 역사다. 그 역사성을 두고 과거 오동동 지역을 현재까지 연결해서는 안 된다. 오동동 문화광장이 조성되면 더 좋은 장소로 이전하자는 소수의견의 목소리는 묵살 시키면서 까지 소녀상을 다짐비로 세운다는 것은 명백한 테러행위이다.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면서 부터 오동동 쇠퇴한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한 대가는 물거품으로 변했다. 창원시는 결국 국비와 도비, 시비 수백억 원의 국민혈세를 투입하고도 상권 활성화 목적사업은 뒷전이고 오히려 쇠퇴 상권이 되길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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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위치에 세워져야 할 캐스케이드와 문화광장트리는 사라지고 ‘다짐비’라는 소녀상이 세워지게 됐던 것. 시민들의 휴식 공간 부지로 보상해 준 건물 보상비와 영업 손실비 그리고 정작 들어설 공지에 10여억의 손실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소녀상 '다짐비'는 전국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게 됐다.무려 시민성금으로 모아 제작된 1억 천만원, 시유지로 세운 공지 보상비 10억원, 그리고 제막식 비용으로 사용하라는 1천만 지원금과 시민들 휴식공간에 설치될 캐스케이드 취소금액 7천만원.이 엄청난 비용이 역사성을 내세워 세운 인권자주평화 ‘다짐비’에 국민혈세가 투입된 것이다.
생계를 위해 살려고 하는 소수상인들과 시민들의 목소리 보다 김종대 건립위원장과 추진위원들의 목소리가 108만 시민의 대표인 안상수 시장의 시정을 제압했던 것이다. 시의원이면 시의원답게 시민을 위해서 일을 해야한다. 특정단체와 연계해 목적 달성을 위해 창원시의회 경제복지문화여성위원회 위원의 직위를 이용해 갑질 행동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치적 개입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산합포구 국회의원과 도의원들 그리고 시의원들은 숨 죽인 듯 목소리조차 내질 않는 모양새가 웃기지도 않는다. 창원시가 막대한 국비와 도비로 시유지로 만든 공지에 시민들의 의견수렴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특정인을 내세워 일부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이 작성한 서류가 창원시 행정을 움직였다.
결국 시민들과 단체들이 십시일반 모아진 성금으로 만든 소녀상이 특정인들에게 작용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꽉 쥐고 있는 두 손은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며 천은 한과 희망,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소녀상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어딘가? 동, 서, 남, 북이 음주가무로 넘쳐나는 술집거리다. 정면에 보이는 곳은 노래주점이다. 슬픈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지금의 술집 한복판에 세워진 소녀상은 무엇을 지키려고……. 무엇을 보려고…….이곳에 세워졌을까? 다짐비 제막식에 참석한 위안부 할머니는 정녕 기뻐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제막식에서 특정인 두 명이 건립추진위로 부터 장소선정 관련 공로패를 받게 됐다. 특히 서 모 씨는 당시 건립추진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로 장소선정 일부상인들과 인근주민들에게 서명을 받게 해 창원시에 제출했다. 오동동 문화광장추진위 위원장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건물주로 부터 보상금을 많이 받게 해 준다는 빌미로 돈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대중 접근성이 높다고...?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오동동 문화광장 조성공사가 올 11월26일 완공 될 예정이다. 마산 오동동 일원의 대표적인 거점지역으로 육성하고 침체되어 있는 도심상가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마산의 상징적 문화광장조성으로 기존 불종거리 테마거리등을 연계한 생동감 넘치는 도시문화를 창출하여 도시경쟁력 향상을 목적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낮에는 너무 조용하고 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바뀌는 술집거리다. 결국 시민들마저 오동동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야 대중접근성이 좋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은가?
소녀상 위안부가 세워진 곳은 오동동 문화광장 부 출입구로 창원시가 10여억 원의 국비와 도비. 시비로 부지를 매입한 곳이다.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 부지를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을 위해 설치취소는 물론 기존 설치될 문화광장 트리역시 장소이전을 강행했다. 조감도 역시 없다. 공사 관계자는 "너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조감도 자체가 없다"고 하소연 했다.
음주가무로 유명한 오동동거리를 바라보는 위안부 소녀상 이름만 바꿔 세워진 ‘다짐비’는 노래주점 네온사인과 술에 취한 취객들만을 바라 볼 뿐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대중접근성 타령인가? 밤 문화를 즐기러 오는 시민들이 위안부 소녀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대부분 시민들은 소녀상을 바라보며 "이건 아닌데" 하며 창원시 행정을 질타하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소녀상건립추진위 관계자들은 제막식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결국 다짐비가 세워졌고 다짐비로 포장된 소녀상 관리는 시민들과 상인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제막식을 가졌지만 위안부 소녀상이 술집거리 한 복판에 세워진 곳은 창원시가 최초다. 앞으로도 술집거리에 세워지는 위안부 소녀상은 없을 것이다.
교육 연계성이 좋은 곳이라
오동동상권은 대부분 술집거리로 이뤄졌다.3.15민주의거 발원지가 있을 뿐 교육 연계성이 좋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로 창동 예술촌이 조성되면서 밤만 되면 이미 청소년 탈선장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어른들마저 협박하는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창원시는 역사성과 대중접근성, 교육 연계성을 이유로 술집거리 한 복판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게 했다. 오동동이 교육 연계성과 무관한 이유는 낮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고 밤에는 취객들이 넘쳐 나는 곳이라는 것은 창원시민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외부 사람들도 오동동하면 술집문화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안상수 시장에게 묻고 싶다. 10억이란 국가예산은 낙후된 마산 오동동 지역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함이지 시민들의 휴식공간에 세워질 시설물 설치마저 전면 취소하면서 까지 소녀상 ‘다짐비’라는 이름으로 세워야 했는지. 또, 공무원 80여명 투입도 모자라 오동동 문화광장에 투입된 인력은 물론 제막식 비용까지 챙겨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다수시민들이 원하는 장소로 이전해 주시길 바라며 안상수 시장의 현명한 결단을 기다릴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