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계성 고분군’ 국가 사적 지정 예고
기사입력 2018-12-07 18:41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신석철
본문
창녕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사면부에 형성된 대규모 고총 고분군으로 서북쪽으로는 계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의 낮은 구릉 여러 갈래에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정상부에는 지름 30m가 넘는 대형분도 5기 정도 있다.
|
계성 고분군은 1917년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의해 처음 고분분포도가 작성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정식 발굴조사는 1967년 5호분, 1968년 1호분·4호분, 2013년~2015년 2호분·3호분, 2017년 156호분, 2018년 2-3~5호분 등 5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계성 고분군 축조집단은 사적 제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세력 이전의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이었음이 확인됐다. 묘제는 주·부곽식 수혈식석곽묘를 채용하였으며, 석곽 상부는 나무로 덮개를 만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목곽에서 석곽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유물로는 창녕양식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와 긴목항아리[長頸壺], 원통모양그릇받침[筒形器臺] 등의 토기류, 금동관편,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등의 장신구류, 말띠드리개[杏葉] 및 발걸이[鐙子], 말안장 꾸미개[鞍橋] 등의 마구류, 무기류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창녕 계성 고분군은 5~7세기에 걸쳐 장기간 동안 고분이 축조되었으며 특히 대형 고총고분은 5세기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어 비화가야의 성립과 전개, 신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창녕양식 토기의 성립과 확산, 아라가야, 다라국, 대가야, 신라 등과의 교류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창녕 계성 고분군 사적 지정은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 창녕군 추진과제의 가장 핵심 사업으로 이번 사적 지정 예고를 통해 군에서는 가야고분군 사적 지정과 관련하여 첫 성과물을 얻게 되었으며,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과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계성 고분군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한 계기가 마련됐다.
창녕 계성 고분군은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사적 지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